가축 전염병, ‘죽이는 것’만이 해답인가?...살처분 남용 우려 제기
가축 전염병, ‘죽이는 것’만이 해답인가?...살처분 남용 우려 제기
  • 임서영 기자
  • 승인 2019.12.23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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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발생한 ASF로 살처분 두수 급격히 증가
살처분 과정에서 ‘동물학대’ 비난 목소리 높아
살처분, 과학적·법적 근거 부족 지적도

[램인터내셔널=임서영 기자] 가축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살처분이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물 학대는 물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7일, 동물자유연대와 동물복지국회포럼은 국회에서 '살처분 정책의 현황과 문제점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는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사태로 살처분 규모가 과도하게 늘어난 사례를 조명했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ASF로 인한 예방적 살처분 두수는 42만여두로, 실제 발생농장 살처분 2만7,000여두보다 15배나 많았다.

ASF뿐 아니라 2000년 이후 지난 20년간 구제역 등 전염병으로 인해 땅 속에 묻은 돼지·소·염소· 사슴 등의 포유류와 닭·오리·꿩·메추리 등 가금류를 더하면 그 수가 무려 9,806만 마리에 이른다. 한해 평균 500만 마리가 살처분으로 죽은 셈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 개체 수가 크게 늘면서 가축 전염병 발생 시 과도한 살처분 조치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 개체 수가 크게 늘면서 가축 전염병 발생 시 과도한 살처분 조치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농림축산식품부와 방역 당국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임의로 살처분 범위를 확대하거나 의식이 소실되지 않은 상태로 동물을 땅 속에 생매장하는 등 무리한 대응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17일 토론회장에서 공개된 영상에서 수렵인들이 멧돼지를 잡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학대를 가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수렵인들은 총을 맞은 멧돼지를 잡아 발길질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뒷덜미를 잡아 대검으로 목을 찌르는 등 잔혹한 방식으로 멧돼지를 포획했다.

환경부는 지난 11월 4일 ‘질병에 걸린 야생동물신고제도 운영 및 포상금 지급에 관한 규정’ 관련 고시를 개정하며, ASF 확산 우려 지역 멧돼지 포획 포상금을 지급했다. 12월 10일까지 3만5,541마리의 멧돼지가 포획된 것으로 밝혀졌다. 동물자유연대는 “질병의 확산에서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질병에 걸린 야생동물 신고제도 운영 및 포상금 지급에 관한 규정’이 어느새 야생동물을 잡아 죽이기 위한 규정으로 둔갑했다”며 정부의 포획 정책을 규탄했다.

동물자유연대는 또, 정부의 살처분 정책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통해 "가스법 도입 등 외형적인 살처분 방식에 인도적 조치들이 강구되었으나 최근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 과정에서 이같은 내용이 완벽하게 무시된 채 ‘무조건 빨리 죽여 묻는’ 탈법적 상황이 용인됐다"며 "무분별한 방역정책이 한국의 동물복지를 십여년 전으로 후퇴시켰다"라고 비판했다.

현재 ‘살처분’은 과학적 근거가 아닌 법적인 근거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 가축전염병예방법과 그 하위 지침에 의거해 방역대를 설정하고 시행하는 국가의 권한행사일 뿐이지, 실효성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공기에 의해 전염되는 ‘구제역’과 접촉에 의해서만 전염되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해법이 다름에도 무조건 살처분 하는 방식을 유지해온 것이다.

한 수의전문가는“정밀한 위험도 평가 없이, 사육돼지 발생이 없는 지역에 대해 예방적 살처분이 내려진 사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사유재산을 사실상 강제로 제한하는 조치인 만큼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면 과학적 근거라도 제시해야 하는 게 방역당국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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